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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백서

대학원 백서 - 대학원이 적성에 맞고 잘 적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나요? 대학원에 지원하셨나요?

 

그렇다면, 자신이 대학원에서 잘 적응하고 대학원 생활이 적성에 맞을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도 하셨을 것입니다. 대학원 진학은 앞으로 짧으면 2년, 길면 10년 가까이 있을 곳을 결정하는 선택이자, 대학원에서 이룬 실적이 앞으로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삶의 흔적이니까요.

 

나름 박사 졸업자로서, 대학원 적응에 필요한 자질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수분들의 의견과 저의 소견을 더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좀 길 수 있지만, 글을 읽고 쓰는 공간인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소화하실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던 것들’의 저자이신 권창현 교수님께서는 ‘좋은 학생, 나쁜 학생, 이상한 학생 (2)’ 에서 좋은 박사과정 학생의 자질로 ‘호기심’과 ‘책임감’을 드셨습니다. 호기심이 있어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보며 지도교수와 소통하고, 책임감이 있어 그러한 적극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백번 공감합니다.

 

다른 많은 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해당 연구분야에 평생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그 분야를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역시 백번 공감합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 단순히 공부만 더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도 거치고, 최종적으로는 논문이라는 결과물을 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외적, 내적 압박도 있구요. 이 과정은 단순히 ‘대학원 졸업하면 내 인생이 더 나아지겠지?’라는 마음으로는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내가 지금 대하는 연구 대상에 대한 호감과 열정이, 그 과정을 이겨내는 원동력입니다.

 

큰 틀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들이 호기심, 책임감, 연구분야에 대한 열정이라면, 제가 생각하는 부수적이지만 필요한 자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행착오에 대한 둔감함, 피드백을 바로 바로 반영하는 태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습관, 기본적인 인격, 글쓰기와 영어 적성입니다.

 

먼저 시행착오에 대한 둔감함입니다. 이공계 대학원 연구는 기본적으로 실험이나 시뮬레이션을 위한 시스템 구축, 데이터 생산, 그리고 데이터 분석과 새로운 지식 도출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시스템이 고장난다던지, 데이터 생산 과정에서 실수를 한다던지, 잘못된 가정으로 분석을 한다던지 하는 시행착오를 정말 많이 겪습니다. 하나하나가 유쾌하지 않지만, 좌절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얼마든지 다시 시도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그런 둔감함이 있어야 목표하던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피드백을 바로 바로 반영하는 태도입니다. 대학원 저년차 때는 모든 것이 생소합니다. 실험절차도, 데이터 분석 방법도, 발표자료 작성 및 발표도 모두 말이죠. 따라서 교수님과 선배님들께 많은 피드백을 받습니다. 이를 미루지 않고 바로 바로 반영하는 사람이 빨리 대학원에서 안식(?)을 얻습니다. 이를테면 랩미팅에서 ‘불필요한 단어는 빼고 그래프는 더 잘 보이게 그려라’라는 피드백을 받았다면, 바로 다음 랩미팅에서 최대한 반영해야 그런 피드백으로부터 빨리 자유로워지겠죠. 당연해 보이는 말이지만, 실제로 피드백을 실천해 왔는지 한번 되돌아보기 바랍니다.

 

다음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습관입니다. 대학원 과정은 스스로 지적 산출물을 완성하는 시간입니다. 수준 있는 지적 산출물 창출을 위해서는 단순히 열심히 논문 읽고 실험하고 시뮬레이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험의 목적과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방법, 결과의 올바른 해석, 논리적이고 가독성 높은 글의 구조 등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생각하는 시간을 따로 갖는 습관을 가졌던 사람은 성장이 더 빠를 것입니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의 저자 최윤섭 박사님도 ‘생각해라, 생각해라, 생각해라’라는 글로 생각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저 또한 매주 토요일 아침 동네 스타벅스에서 두 시간 정도를 커피와 함께 연구 생각에 쏟았습니다. 그 시간이 제겐 꽃에 물을 주는 것에 비견할 만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논문/발표 아이디어의 대다수를 그 시간이 만들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음은 기본적인 인격입니다. 이건 단체생활이라면 어디서든 적용되는 이야기이죠. 일부 예외는 있겠지만 절대다수의 대학원도 엄밀히 단체생활입니다. 지도교수님은 물론 동료 대학원생들과 많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며 연구에 관해 소통하고, 때로는 서로의 일을 (종종 연구가 아닌 일도) 직접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본인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서, 연구실 분위기도 살리고 동료들도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지요. (교수님, 또는 다른 동료의 인격이 수준미달인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뤄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어와 글쓰기 적성입니다. 연구의 이상적 목표는 지식 창출로 인류에 기여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인 대학원 생활 목표는 SCI 논문 게재입니다 (특히 박사과정이라면 졸업에 꼭 필요 하지요). 당연히 영어 문서를 읽고 쓰는 걸, 적어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야 합니다. 쓰는 과정이 고통스럽긴 할 지라도요. 쓰다 보면, 그리고 교수님께 (또는 필요하면 전문 교정 업체 등으로부터) 첨삭을 받다 보면 실력은 올라갑니다. 그 때까지 지속하려면 적성에 맞아야겠지요.

 

정리하자면, 호기심 + 책임감 + 연구주제에 대한 열정은 필수, 거기에 시행착오에 대한 둔감함 + 피드백을 반영하는 태도 + 생각하는 습관 + 인격 + 영어와 글쓰기 적성이 더해지면 금상첨화입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학습 능력은 분명 중요한 자질이지만 결정적이진 않습니다. 체인지 그라운드의 의장이자 빡독으로 유명하신 신영준 박사님께서 올리신 유튜브 영상 ‘대학원은 누가 가는가’에서 나오는 내용인데요, 이미 있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잘 하지만 거기서 모르는 한 걸음을 더 나아갈 때 헤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미 있던 지식 공부는 잘 했지만, 그 지식들에 대해 소위 ‘마음에 안 드는 것, 뭔가 개선할 점이 있어 보이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대학원에 맞지 않다는 것이죠.

그러니 본인의 학점이라는 숫자보다는, 자신이 이번 글에서 언급된 자질들을 갖고 있는지를 고려해서 대학원 진학 여부를 결정하셨으면 좋겠습니다.